망치 하나로 금속 위에 물성을 표현해 한국적 결을 만들어내는 작가, 금속공예가 이상협의 개인전이 인사동 갤러리 단디에서 이달 말까지 개최된다.
윌리엄 리(William Lee) 라는 이름으로 더욱 알려져 있는 작가는 17년간 영국에서 활동하며 영 디자이너 실버스미스 대상과 크래프트맨십&디자인 어워드 등을 수상한 바 있다. 또, 미국의 필라델피아 미술관과 에버딘 미술관,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 영국의 그로서스 컴퍼니와 팸브로크, 캠브리지 유니버시티 등 세계 유수의 박물관과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이 되어있는 등 세계적으로 활발한 족적을 남겨왔다.
작가가 활용하는 작품의 주된 제작 기법은 ‘단조 기법’으로 순수하게 수작업만으로 ‘고체인 금속재료를 해머 등으로 두들기거나 가압하는 반복적 방법을 통해 일정한 모양으로 만드는 조작’이다. 금속판형을 수천, 수만 번씩 망치질을 하여 의도한 형태를 만든다. 이를 위해 치밀하게 계산하는 작업이 우선적으로 따라온다. 망치질과 더불어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불’이다. 망치의 크기나 모양, 힘의 정도뿐만이 아니라 열을 가하는 시간에 따라 색감과 질감의 정도가 미세하게 달라진다. 오랫동안 내려온 매우 전통적인 기법이지만 그 작업의 고됨으로 현재는 희소성이 생긴 공정 법이기도 하다.
이상협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적 미(美)다. 도자로 빚은 듯한 유려한 선과 고운 빛깔을 금속만이 가지고 있는 단단함과 불멸성의 광채로 재현한다. 이러한 작가의 작품 세계는 유럽의 금속공예계를 사로잡고 한국의 도자 선과 한국적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를 알리는 기회가 됐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 ‘티 앤 실버(Tea and Silver)’인 만큼 은으로 제작된 다양한 차 도구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다. 생소한 소재로 만들어진 우리에게 친숙한 형태의 작품들은 아름답고 신비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늘 커다란 형태로 압도되는 작품을 선보였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공예품으로서의 은 생활기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한국에서 끊어진 은기 문화를 대중들에게 알리고 쓰이게 하고 싶다고 말한 작가는 ‘이런 것을 사용하면 좋다’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대중들이 작품을 보며 우리에게서 잊혀져가는 것들을 상기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작가는 “망치질이라는 기본적인 기법을 이용하여 금속이라는 물성이 반하여 한계에 도전하는 제작 과정이 나의 작품세계의 중요한 축이다. 나는 우리나라 전통 도자의 기형을 금속으로 재현하면서 ‘기(器)’라는 절제된 형태 안에 한국적인 조형미라는 문화적 코드를 담아내고자 한다. 작품 표면에 녹아 흘러내리는 듯 유연한 선과 작은 흔적들로 장식된 질감은 한국적인 문화코드의 기형 위에 새로운 변화를 담고자 함이다"라고 작업의도를 설명했다.
그는 또 "작가로서 지속적으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에 가장 중점을 둔다. 이 말은 여러 방향에서 해석할 수 있지만 현재의 작업과 완성된 결과물이 다음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이유와 힘이 되게 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사진=갤러리 단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