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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호 선물학 박사 꿈꾼다' 김은영 키세스 대표

 

‘매일 선물 하는 여자’. 금융상품 선물(先物)이 아니다. 받으면 누구나 좋아하는 바로 그 선물(膳物, Gift)이다. 김은영(44) ㈜키세스 대표는 ‘선물 만드는 여자’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판촉물’ 혹은 ‘기념품’ 전문 제조 유통 기업 CEO다. 

얼핏 초콜릿이 떠오르는 사명 ‘키세스(KEYCESS)’는 ‘성공의 열쇠’를 뜻하는 ‘키 오브 석세스(KEY of sucCESS)’의 약자다. ‘키세스’에서 만드는 소위 ‘판촉물’ 중에는, 지하철역 입구에서 자주 받는 볼펜이나 휴대용 티슈, 기업 행사장에서 쇼핑백에 담겨 ‘뭘까?’ 궁금증을 자아내는 기념품 등 그 품목이 끝없이 다양하다. 판촉물이나 기념품을 보면 그 시기 ‘잘 나가는’ 인기 소품들을 가늠할 수 있을 정도다. 지난 여름, 가장 흔하게 받을 수 있는 ‘기념품’은 일명 ‘손풍기’로 불리는 휴대용 선풍기였다. 블루투스 이어폰이나 각종 충전기, USB, 텀블러, 에코백, 머그컵 등도 ‘스테디’한 인기 품목으로 꼽힌다.

김은영 대표가 키세스를 창업한 건 지난 2007년이다. 어느새 12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창업 이래 의정부에서 계속 둥지를 틀다 지난해 ‘핫한 동네’ 성수동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해 ‘인 서울’에 성공했다. 

 

 

이벤트 기획자서 판촉물 제작사 대표로...집 작은 방서 컴퓨터 하나로 시작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편집회사에 취직을 했어요. 학교에서 맘대로 디자인을 하다가 회사에서 시키는 것만 하려니 좀이 쑤시더라고요. 이후 디자인회사 몇 군데 다니다 웹에이전시로 옮겼는데 일이 너무 힘들어 맨날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요. 두 달간 8킬로가 빠지고 화장실에서 쓰러져 넘어졌는데 그 때 다친 흉터가 아직도 있어요.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죠. 회사 그만두고 뭐 할 게 없나 신문-잡지를 뒤적이다 ‘이벤트 기획자’라는 직업을 알게 됐어요. 어, 이런 직업이 있어? 왠지 활동적인 저랑 잘 맞을 것 같아 당장 그 회사에 연락해 취업이 됐어요.”

김은영 대표는 그 이벤트 대행사에서 몇 년을 미친 듯이 일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지방 출장에 막내이다 보니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았고 조명, 무대세팅까지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다. 기업 행사나 이벤트를 할 땐 일주일 이상 합숙하며 집에 못 들어가는 날이 부지기수이고, 회사 간이침대에서 자는 건 일상이었다. 그런데 그 일이 그렇게 재미있었다. ‘이게 내 천직이구나’ 느낄 정도였다. 당시 회사 동료, 선후배들은 아직도 끈끈하게 연락하고 있고 무엇보다 남편도 이 회사에서 만났다.

이벤트 기획의 시작은 제안서를 쓰는 일이었다. 그리고 100페이지 이상 되는 그 제안서의 마지막 한 두 페이지에는 항상 판촉물 계획이 첨부됐다. 보통 행사나 이벤트에는 참석자들을 위한 기념품이 빠질 수 없기 때문.

그렇게 이벤트 기획자로서 커리어를 쌓고 선망하던 업계 메이저 회사로의 이직에도 성공해 마냥 성공가도를 달릴 듯 했다. 그랬는데... 갑작스런 결혼과 출산이라는, 그의 인생 궤도에 없던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어떻게든 일을 계속하려고 애썼으나 결국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당시만 해도 이벤트 기획자는 가정-육아와 병행이 쉽지 않은 직종이긴 했다.

“신혼집이 의정부였는데 회사 그만두니 참 억울하고 우울했어요. 동네에 아는 사람 하나 없어서 맨날 회사 사람들이랑 통화를 했어요. ‘이번 콘셉트는 뭐야?’하며 무료로 기획안 뒷부분을 써주기도 하고요. ‘나도 소외되지 않고 일한다는 기쁨?’ 뭐 그런 걸 느꼈어요. 그러다가 기획안 끄트머리 판촉물 부분에서 동료들이 ‘바쁘고 정신없으니까 그냥 아예 네가 납품하면 안돼?’하게 되고 집 작은 방에 컴퓨터 하나 놓고 아르바이트처럼 시작하며 창업을 하게 됐어요.”

 

광고비 없어 제안서 쓰고 또 쓰고...‘디테일’로 승부

그렇게 개인사업자등록을 하고 사업을 시작하니 당장 홈페이지가 필요했다. 관련 제작-분양업체에서 홈피를 하나 얻어 본격적으로 일을 했다. 업체의 조언은 ‘온라인 광고 많이 해라’였지만,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입장에서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광고를 하긴 무리였다. 광고 보다는 제안서를 써서 업체 담당자들과 접촉했다. 매일 매일이 ‘제안서’의 나날이었다. 

“제가 일하는 작은 방 문밖에서 우리 아기가 자지러지게 울곤 했어요. 전화로 업체와 통화할 때 혹시라도 아기 울음소리가 들어갈까 봐 조마조마 하곤 했죠. 처음엔 남편과 부모님들 모두 제가 사업 하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기셨어요. 집에서 일하니까 가족들 눈치가 보여 식구들 잠들면 그때 살짝 일어나 날 새도록 제안서 쓰느라 1,2시간 밖에 못자고 했어요.”

아르바이트처럼 알음알음 일감을 받아 일하던 첫해에만 4억 매출이 났다. 창업 이듬해엔 집 앞 상가 한 귀퉁이에 작은 사무실도 냈다. 그리고 그 골목에서 조금씩 사무실을 넓히고 직원도 한 둘 늘려가며 그렇게 사업을 확장해나갔다. 사무실 규모가 처음 6, 7평에서 20평대, 그리고 50평대까지 커졌다. 

“점점 일이 늘어나면서 혼자서는 감당이 안 돼 2008년 작은 사무실을 얻고 구인광고를 냈어요. 첫 면접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요. 이력서를 넣고 면접 보러온 분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어요. 이런 회사에 지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그저 놀라웠죠.”

지난해 이전한 성수동 사무실은 오피스 빌딩에서 아예 분양을 받아 깔끔하게 꾸몄다. “대출을 많이 받아 거의 은행 거죠 뭐”하고 김은영 대표는 웃지만 현재 4명의 직원과 함께 밥 먹을 시간도 제대로 없이 정신없이 일하고 있다. “2명 정도 더 뽑아야하는데 제가 욕심이 많아서 못 뽑고 있어요”라며 겸연쩍은 표정을 짓는다. 

“키세스의 특장점이라면 디테일? 직원들에게 항상 고객 입장에서 이 제품을 어느 장소에서 어떤 사람들에게 어떻게 나눠줄지 상상하라고 해요. 그에 맞게 가장 편하게 쓸 수 있게 다 만들어주는 거죠. 납품서도 정말 꼼꼼하게, 나중에 봐도 다 활용할 수 있게, 구매 담당자에게 원본으로 줘요. 본인 이름으로 보고용이라든가 내부자료로 활용하라고요.”

 

“판촉물 시장, 경쟁 치열하지만 굉장한 블루오션...‘디자인’이 관건”

키세스는 한국판촉선물제조협회 회원사로 김은영 대표는 협회 심사위원을 맡고 있다. 전체 회원은 200여명이 넘지만 워크숍 등을 실시하면 대략 100여명이 참석한다고. 이 중 여성이 6, 7명에 불과할 정도로 여성들에게는 불모지와 같은 곳이 바로 이 판촉물 제조업계다. 

“몇 명 되지 않는 여성 CEO들 대부분이 남편과 같이 사업을 하고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저 혼자예요. 그런 현실을 볼 땐 좀 속상하기도 해요. 여성들이 제약 없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돼야 하는데 현실은 아직 그렇지 못해서요.”

여성 CEO가 드문 상황이지만, 판촉물 제작-유통이라는 분야는 오히려 여성들에게 더 유리할 수 있는 분야라고 김 대표는 말한다. 기업체 판촉물 기획-구매 담당자들 대부분이 2,30대 여성인 경우가 많아 대화를 풀어나가기 더 수월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고객의 니즈나 취향에 맞게 제품을 기획하거나 복잡한 공정의 프로세스를 섬세하게 잘 풀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도 여성에게 강점이 있다고.

업계의 미래나 비전에 대해서도 김 대표는 긍정적이다. “이 일은 굉장한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기본적으로 되게 큰 시장이거든요. 한편으론 아무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진입 장벽이 낮은 것도 사실이에요. 퇴직하신 분들도 많이 뛰어들고요. 경쟁이 엄청 치열하죠. 그런데 안타까운 건 진정한 전문가는 없는 것 같아요. 판촉물 디자인 전문도 따로 없고 기획-영업에 대한 전문 프로세스랄까 그런 것도 부족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고객이 원하는 걸 제대로 해주면 확실한 자신의 영역을 만들 수 있어요. ‘디자인’이 관건이죠. ‘하늘 아래 새로운 제품은 없다’지만 고객들이 원하는 새로운 제품들이 분명 있거든요. 어떤 물건이든 다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고, 그렇다보니 대부분 제품의 유통구조도 알게 되고... 근데 업무 공정상 일이 많고 그래서 늘 바쁜 것 같아요.”

 

 

“업체 많지만 진정한 전문가 없어...선물학 체계적으로 공부하고파”

김은영 대표는 사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현재 경영대학원 박사 과정에 입학해 공부 중이다. 그는 ‘선물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해 ‘국내 1호 선물학 박사’가 되고자 하는 꿈을 갖고 있다. 

“꼭 판촉물 개념이라기보다 선물에 대한 여러 가지들을 공부하고 정리하고 싶어요. 선물을 어떤 기준에서 어떻게 준비하는지 선물 받았을 때 만족도, 효과 등에 대한 정량적 데이터 같은 것도 연구하고 싶고 ‘선물심리학’이라는 것도 만들 수 있을 것 같고요. 선물의 역사, 미래 등 그 범위가 무궁무진하고 방대할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중 한 카테고리가 판촉물이 될 수 있겠죠.”

여러 업체가 효과적으로 협업을 하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협동조합의 설립도 김은영 대표의 구상 속에 자리하고 있다. 고객들이 원하는 더 퀄리티 있는 제품을 더 저렴한 단가에 제공하고자 하는 꿈, 그것이 김은영 대표의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인 꿈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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