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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 되니 머리로 하던 사업, 마음으로 이해했어요”

유원선 함께걷는아이들 사무국장

 

이상하게 1년 반이면 ‘몸이 근질근질’ 이직을 하게 되는, 아니 하고 싶어졌던 ‘프로이직러’가 어느새 8년 째 한 직장에 몸담고 있다. ‘최장기 근무’를 넘어 실질적 수장으로 조직을 이끌어가고 있다. 사회복지법인 함께 걷는 아이들(이하 ‘함걷아’) 유원선 사무국장 얘기다.

첫 직장은 처음이라 뭣 모르고 2년, 공부가 필요하다 싶어 대학원 석사를 마치고 들어간 두 번째 직장 1년 반, 세 번 째 직장도 1년 반, 그리고 1년 여 육아에만 전념하다 들어간 네 번 째 직장은 4년. 상대적으로 재직기간이 긴 이유는 본부가 아닌 프로젝트 기반 사업단, 즉 외곽조직에서 일했던 덕분이다. 이후 서울시 출연기관으로 여러모로 처우와 체계가 좋았던(혹은 그렇게 보였던) 기관에선 오히려 1년도 못 채웠다. 그리고 큰 깨달음, ‘아, 전 직장이 일-가정 양립이 꽤 잘 됐던 거구나’.

그 다음엔 ‘이젠 정말 푹 쉬어야겠다. 다시 일하더라도 조직엔 들어가지 말아야지’ 하며 휴식기를 가지려했으나 맘대로 되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사회복지사 유원선을 찾았다. 실은, 일을 꽤 야무지게 잘 해냈던 덕분에(=능력자) 제안도 많이 들어왔다. 프리랜서로 일하며 제안서나 매뉴얼 작업, 단기 프로젝트, 시간 강사 등으로 직장 다닐 때보다 더 수입이 많았다. 신기하게 프리랜서 기간도 1년 반 정도였다.

‘1년 반 프로이직러’ 8년 째 한 곳에...“꿈의 직장 맞나 봐요”

그러다 역시 제안을 받고 ‘함께 걷는 아이들’ 팀장으로 다시 조직에 들어와 8년 째 일하고 있다. ‘정말 좋은 직장인가 보다’ 농담 반 우스갯소리를 건넸더니 유원선 국장은 환하게 웃는다.

“실은 ‘함걷아’ 들어와 한 3년 쯤 후엔 어김없이 위기가 있었어요. 근데 팀장으로 있던 제가 사무국장으로 승진하면서 조직을 이끌어야 하는 상황이 됐어요. 그간 해왔던 사업들, 그리고 새로 세팅해야 하는 사업들이 있어 책임감이 생기더라고요. 일하다보니 어느새 만 8년을 향해가고 있어요. 와~ 제 커리어에서 최장기 근무지예요. 저한텐 ‘꿈의 직장’ 맞나 봐요. 하하.”

서글서글 무난해 보이는 인상에 ‘1년 반, 프로이직러’였다는 게 살짝 믿기지 않았지만 어쨌든 현재는 한 기관의 장기근무자라,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직러’ 입장에서는 살짝 신기하고 부럽기도 했다. 유원선 국장이 여러 직장에서 또 프리랜서로 끊임없이 일할 수 있었던 건 역시 ‘일 잘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1년 반 짧은 기간 프리랜서로 일할 때도 일이 끊이지 않았고 수입도 많았지만 ‘수입이 좀 적을지언정 전업 직장이 더 맞는 것 같다’는 생각에 다시 들어온 조직이 지금의 ‘함께 걷는 아이들’인 셈이다.

“위기상황 청소년과 이들 돕는 활동가들을 지원해요”


 

‘함걷아’의 대표사업으로 많이 알려진 것이 ‘올키즈스트라’이다. 벌써 10년 째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고 또 눈에 보이는 피부에 와닿는 많은 성과를 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올키즈스트라’는 문화예술로부터 소외된 취약계층 아이들에게 악기와 음악교육을 제공하고 오케스트라를 조직해 공연도 하면서 이들에게 문화예술 향유의 기회를 주는 사업이다. 지금은 문화체육관광부나 문화예술전문기관, 어린이 복지기관 등에서 여러 비슷한 사업을 하고 있지만, 사회복지기관에서 주요사업으로 이렇게 오랫동안 꾸준히 체계적으로 하는 곳은 ‘함걷아’가 유일하다.

그래서인지 ‘올키즈스트라(Allkidstra)’는 함걷아의 대표사업으로 인식되는데, 이 것 말고도 의미 있는 사업들이 적지 않다.

“청소년사업도 있는데 많이 홍보하지 않아서 그런지 잘 알려지진 않은 것 같아요. 가출 청소년 등 위기상황에 놓인 청소년들을 위한 사업들은 일종의 ‘낙인’의 성격이 있을 수 있어서 적극적인 홍보를 하는 게 어렵기도 하고 적절치 않을 수도 있어서요.”

청소년지원사업 중에는 ‘엑시트 버스(EXIT BUS)’가 유명하다. ‘엑시트 버스’는 매주 목, 금요일 저녁 8시부터 새벽 1,2시까지 수원역과 서울 신림역에 정차해 위급한 상황에 있는 청소년들을 따뜻하게 보듬어 고민도 들어주고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해주는 공간이다. 식사와 간식, 물품을 제공하고 상담과 의료서비스, 가출 청소년이나 미혼모 등 도움이 절실한 청소년들에게 손을 내미는 ‘움직이는 센터’다.

위기상황 청소년들을 돕는 기관과 활동가들에게 이들이 지치지 않게 지원프로그램도 제공한다. 실제 이들 기관이나 활동가들을 발굴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6개 단체를 선정해 지원하고 ‘자몽’이라는 네트워크 모임도 만들었다. 현장 활동가들 대상 워크숍은 이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으로 점점 더 뜨거운 반응 속에 진행되고 있다.

“직접 악기 배우고 무대 서보니 아이들이 어떤 마음인지 알게 됐어요”

처음 함걷아에 입사할 때 유원선 국장은 음악에 대해 완전 문외한인 체 ‘음악팀장’이라는 직책을 맡았다. ‘올키즈스트라’ 등의 사업을 순전히 사회복지적 차원에서 진행했다. 팀원들도 마찬가지였지만 그 중 작곡을 공부한 직원이 한 명 있었다.

“음악이라는 도구로 아이들이 좀 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으려면 어떤 강사, 시스템을 조성해서 아이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스트레스와 문제 해결 등의 변화를 겪을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했어요. 그렇게 사업을 오랫동안 머리로 이해하고 평가하다가 저와 직원들이 직접 악기를 배우고 또 졸업한 아이들이랑 함께 연주회 무대에 서면서 정말 많은 걸 깨닫게 됐어요.”

유원선 국장과 직원들은 함께 관악기를 배웠다. 몇 년을 배우고 아이들과 공연을 준비하고 무대에 서면서 합주와 지휘자, 무대에 선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됐다고. 특히 연주회라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 너무 큰 영향이었고 진짜 좋은 경험이라는 걸 알게 됐다.

“머리로 하던 사업을 마음으로 이해하게 됐어요. 악기를 배우며 새로운 세계를 만났죠. 하하. 배우기만 하는 게 아니라 프로그램에 연주회를 꼭 넣어야 한다는 것도요. 올키즈스트라, 진짜 좋은 사업이구나를 새삼 느꼈고요.”

올키즈스트라는 목관-금관악기로 이뤄진 ‘관악단’이다. 전국 9개 지역에서 운영되고 주로 지역아동센터 콘소시엄으로 진행돼 취약계층 아이들이 참여하고 있다. 지방에선 아예 연주를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서울에서는 일부 연주 경험이 있는 아이들도 함께 선발하고 있다. 전공 지원까지 해서 경연대회도 나가고 음악대학 관련 전공 입학생도 배출했다.

“일-가정 양립 직장으로 세팅...내년 10주년, 안정적 후원구조 만드는 게 과제”

지난 2011년 입사했으니 유원선 사무국장이 함걷아와 인연을 맺은 지도 올해로 8년째다. 처음 입사했을 땐 달랑 3명이던 직원 숫자가 인턴을 포함해 어느새 12명으로 불어났다. 그럼에도 사업에 비해 직원이 부족해 유원선 국장이 기획경영팀장의 역할을 하면서 연구, 대외협력활동, 이사회 운영 등 실무까지 맡고 있다.

유 국장이 함걷아에서 ‘최장기 근무’를 할 수 있었던 건 책임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조직 시스템을 최대한 ‘일-가정 양립’이 가능할 수 있도록 세팅한 영향도 크다. 비교적 이직이 낮고 장기근무자들이 늘면서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된 직원들이 늘어나 한 달 총 근무시간을 자율적으로 채우면 되는 탄력근무, 폭염-혹한기 재택/원격근무 등 여성들이 가정을 돌보며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근무환경을 만들었다. 이는, 짧게 집중해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유원선 국장의 업무 스타일과도 잘 맞는 시스템인 셈이다.

“그동안 야근 없이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었던 건 특별히 모금-수익사업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사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가 가능했기 때문일 겁니다. 함걷아가 내년에 창립 10주년이 되는데, 소수의 고액 기부자들에게 의존하는 시스템은 불안정한 요소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고민했을 때 보다 더 안정적이고 건강한 후원구조를 만드는 게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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