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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력개발, 새 패러다임으로 접근” 조영미 서울시여성능력개발원장

 

온화한 인상, 조곤조곤 부드러운 말투와 목소리... 조영미 서울시여성능력개발원장을 보면 한눈에 ‘부드러운 카리스마란 이런 거구나’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 부드러운 모습 속엔 엄청난 열정과 욕심이 숨어있다. ‘독한 워커홀릭에 목표-성과주의자’라고 스스로도 인정한다. 그런 ‘일에의 몰입’은 급작스러운 ‘번아웃(Burn-out)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전 직장에서 11년간 스스로 제어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나게 일에 집중하고 몰입한 결과, 2년 전 퇴직했을 때 그 어떤 것도 할 생각이 안 들었어요. 무작정 가장 하고 싶은 걸 하러 갔는데 그게 ‘피아노 레슨’이었어요. 운동보다 더 하고 싶었고 절실했어요. 무려 45년 만에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아서 안 될 줄 알았는데 배우니까 또 되더라고요. 1년간 피아노만 쳤어요(웃음). 그렇게 1년 쉬고 나니 다시 일할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이전 직장’은 서울시 출연기관인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다. 이곳에서 조영미 원장은, 여성정책연구부터 사업, 국제협력 업무까지 두루 경험했다. 퇴직 전엔 ‘정책개발실장’을 맡았는데 ‘재단에 있는 동안 정작 연구는 많이 못한 것 같다’고. 그도 그럴 것이 ‘여성가족재단’은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면서도 전문 연구기관이라기 보다는 실제 정책과 사업에 필요한 실용적 연구와 사업, 컨설팅을 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1년 푹 쉬고 나니 다시 일할 에너지가 생겼어요. 대학 강의와 성주류화-성별영향평가 컨설팅, 공무원 대상 강의, 공동연구 등을 하며 지냈어요. 재단에서는 직접 연구와 컨설팅을 할 기회가 적었는데 오히려 프리랜서를 하면서 서울시 정책이 어떻게 동 단위까지 적용되는지를 확실히 알겠더라고요. 풀뿌리 현장에서 어떻게 정책이 수용되는지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요. 출연기관에서 서울시와 일했던 공공의 경험에 젠더 감수성이 융합되니까 훨씬 더 현장감 있는 강의를 하게 되더라고요.”

‘성과주의 워커홀릭’, 11년 만에 번아웃...‘풀뿌리’ 경험 후 다시 새 도전

11년간 몸담은 서울시여성가족재단 퇴직 후 1년은 피아노만 치고, 또 1년은 강의-교육-연구로 워밍업(?)을 한 그는 올해 4월 서울시 산하기관인 서울시여성능력개발원장에 취임했다.

서울시여성능력개발원(이하 여능원)은 서울시 각 권역에 있는 여성발전센터(동/서/남/북/중부센터)와 각 구에 설치된 여성인력개발센터를 총괄, 조정, 평가, 지원하는 헤드쿼터로서, 일자리 기관들의 네트워크 및 여성의 직업-경제역량 강화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요즘 화두인 일자리, 그 중에서도 여러 면에서 여전히 불리한 여건과 상황에 처해있는 여성들의 직업교육과 취업지원사업을 펼치는 인력개발기관의 중심축인 셈이다. 2002년 현재의 동부여성발전센터에서 개관한 ‘여능원’은 2014년 대방동 여성가족재단 서울여성플라자로 자리를 옮긴 뒤 불과 몇 달 전 지금의 널찍한 새 보금자리(마포구 도화동 포스트타워 7층)로 이사했다.

“저는 아무래도 실무형 리더십인가 봐요, 하나하나 펜으로 고치는. 직원들이 피곤한 스타일이죠(웃음). 근데 지금 여성능력개발원은 실무파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아요. 여능원 조직이 설립 이후 변화와 부침이 많았는데 시 산하기관으로서 점점 더 엄격한 행정 기준에 맞춰 일을 해야 해요. 시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이고 많은 부분이 시민에게 공개되다 보니 행정이 더욱 투명해지고 예산을 더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써야 하죠. 그런 요구들이 더 커지다보니까, 그동안 약간 NGO나 단체처럼 일하던 분위기를, 공무원 행정조직에 맞게 맞춰나가야 하는 과제가 있어요. 가각의 리더마다 자기가 해야 하는 역할, 맞는 역할이 있는데 저는 2년간 그 틀을 잡아나가야 할 것 같아요.”

실제 여능원은 직원들의 이직이 많아 6개월 내 입사한 직원이 70%나 될 정도이고, 공공조직에서 일해 본 직원이 거의 없어 여성가족재단에서 오랜 기간 서울시와 호흡을 맞춰 일한 조영미 원장의 경험과 리더십이 더욱 필요한 상황이다.

“한 우물 파기보다 안 해본 거 도전하는데 재미”

조영미 원장은 ‘의외성’이 많은 사람이다. 어쩌면 자신은 자연스러운데 남들만 그렇게 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앞서 부드러운 외모에 감춰진(?) ‘독한 워커홀릭에 목표-성과지향주의’라는 표현도 했지만, 여기에 또 하나, 그는 상당히 진보-급진적 성향을 지닌 여성학 연구자이기도 하다.

‘대졸여성 공채’라는 걸 찾아보기 힘들던 1980년대 초반, 조 원장은 모 건설대기업 대졸여성 공채 1기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대졸 여성 20명을 뽑았는데 그야말로 ‘사무실의 꽃’이었다고. 회사에서도 이들에게 어떤 일을 시키고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계획이 없었다. 여직원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심한 ‘가부장적’ 조직이었다. 여직원이 어떤 일을 해내면 그 일이 ‘쉬운’ 일이 됐고, 남직원이 못해내면 ‘어려운 일’이, 여직원이 못하면 ‘무능력’으로 치부됐다.

딱 1년 2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동기 20명 중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후 대학원에서 공부도 하고 결혼생활도 평탄했지만 늘 답답함과 갈증이 있었다.

“우연히 앨리슨 재거(페미니스트 철학자)의 책(여성주의 정치학과 인간본성(Feminist Politics and Human Nature), 이후 ‘여성해방론과 인간본성’이라는 제목의 번역서로 출간)을 읽게 됐어요. 국내에 번역본이 나오기 전에 읽었는데, ‘아, 이거구나, 내가 느꼈던 부당함이 이렇게 언어로 표현되고 설명이 되는 구나. 이 공부를 해야 겠다’ 싶었어요. 처음으로 내가 해보고 싶은 것, 공부하고 싶은 게 생겼는데 그게 ‘여성학’이었어요.”

그렇게 뒤늦게 이화여대 여성학과 대학원에 입학해 재미있게 공부하고 박사학위도 땄다. 그리고 다시 발을 디딘 조직이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다. 그는 “공부하고 연구하는 거 좋아하는데 실제 재단에서는 직접 연구는 잘 못하고 연구 관리를 했다”며 웃는다.

“전 한 우물 파기보다 새로운 것, 안 해본 것에 도전하는 재미를 가진 사람인가 봐요. 재단에 들어갔는데 여러 일들을 하다보니까 스스로 ‘정책연구 안 해도 돼, 사업해도 괜찮아, 관리를 해도 재밌어’라고 생각했어요. 완전 에너지가 소진되고 ‘지금쯤은 다시 출퇴근하라 해도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싶을 때 여능원장 채용공고를 봤는데 솔직히 망설이긴 했어요. 인력개발분야는 여성정책과는 또 좀 달라서요. 근데, 안 해본 거에 도전하는 재미, 무모함 같은 제 특성으로 ‘가서 하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하게 됐어요. 하하.”



 

현장 밀착형 연구-조사-분석-솔루션 제공...주요 틈새 메운다

서울, 더 나아가 전국 곳곳에 자리한 여성인력개발기관은 1970년대 후반 ‘부녀복지관’으로 시작해 여성들의 직업교육과 취-창업지원 등에 많은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시민들의 요구도 더욱 세분화-다변화 되면서 많은 인력개발기관들이 변화-쇄신의 한 가운데에 서 있다.

“그간 인력개발기관들이 단순직무 중심 교육을 많이 해왔는데 산업이 고도화되고 또 여성들의 학력수준도 높아지고 특히 서울의 경우 인적자원들이 더욱 다양한 상황에서, 또, ‘고용 없는 성장시대’와 유례없는 취업난 속에서 기존 틀의 교육과 사업으로는 성과를 올리기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여능원의 경우 인력개발기관의 총괄 기능을 강화하고 다양한 여성 인적자원의 특성에 맞는 전문화된 맞춤형 교육 제공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많은 예산 투입이 필요한데 이건 또 쉬운 일은 아니어서 어려움이 많습니다.”

여능원의 총 정원은 조 원장까지 11명이다. 정원 외 계약직, 단기인력까지 합치면 35명이지만 상주 인원으로 따지면 여전히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여능원의 대표 지속사업이자 많은 호응을 얻고 있는 ‘일자리부르릉 버스’ 2대가 매일 운행되며, 특히 여성들이 밀집된 지역에 출동해 직업상담 및 연계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 서울에서 20여개가 운영되고 있는 ‘새일센터’를 총괄하는 ‘광역새일센터’를 운영, 경력단절 여성 대상 직업상담-취업연계 사업을 지휘한다. 여기에 인력개발기관 종사자 및 강사 역량 강화 교육도 빼놓을 수 없다.

이와 함께 조영미 원장의 장점인 ‘정책연구’ 기능도 올해는 더욱 강화한다. “연구인력이 없는데 연구과제가 5개예요. 큰 포럼이나 박람회, 총괄 기능을 수행하려면 연구가 필수적으로 선행돼야 하죠. 제가 원장으로 오게 된 배경도 이게 아닌가 싶어요.”

연구 프로포절부터 직원들과 같이 쓴다. 여성일자리정책 연구의 경우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큰 방향을 잡지만, 직업훈련-취업연계에 있어 현장수요 분석, 구인구직 수요 분석, 앞으로의 직업 전망과 이에 따른 특화 교육 개발 등 현장 밀착형 연구, 조사, 분석은 여능원의 몫으로 앞으로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예컨대 여성들의 ‘경력단절’을 미리 예방하기 위해 여성들이 다니기 좋은, 제도적으로 잘 갖춰진 기업을 직접 방문해 여성들의 장기근속을 가능케 하는 조건, 제도 등 요인을 파악하고 여성근로자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30개 기업을 샘플로 해서 아주 깊이 있는 분석을 하는 식이죠. 거시 통계 말고 현장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데이터들을 모아 우리가 필요한 자료를 만들어가는 조사, 분석, 솔루션 등인데 이걸 꼭 ‘연구’라고 명명해야할 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현장 중심의 틈새 연구가 매우 필요한 것 같습니다.”

끝으로 좀 다른 얘기일 수 있지만 조영미 원장은 중요한 화두를 꺼냈다.

“워커홀릭으로 달려오기만 하다가 너무 지쳐 아무 준비 없이 퇴사를 하고 쉬고 나니 일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어요. 많은 경우 이제 90세, 100세 수명이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됐어요. 근데 예전처럼 60세에 은퇴하고 많은 기간 취미나 봉사생활만 한다? 이게 경제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100세 플랜에 맞춰 일, 경제적 수입이라는 게 스펙트럼이 다양하게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은퇴 후 취미, 봉사에 전념할 수 있는 분들이 많지 않고 어쨌든 많은 기간 일이 더 필요하죠. 물론, 기존에 했던 일의 패턴과는 달라져야겠죠. 축적된 전문성과 관련 있는 일들을 주 3일 혹은 매일 시간제로 하는 식으로 너무 과하지 않는, 그러나 취미와 봉사와는 또 다른 성격의 일이 필요하고, 관련 정책도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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